B.3 재조립되는 관계


메소드 METHOD 

재하X영우


B.재조립되는 관계



 >영우 (영우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.)


 지금보다 더 어렸던. 모든 것이 좀 더 지루했던 그때. 딱히 흥미도 관심도 없었던 연예계로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본인을 연예계 관계자라고 소개하던,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낯선 사람 때문이었다.
 
 처음부터 무언가를 가진 적이 없어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에 같은 길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의 절박함 또한 알 수 없었던 아이돌 김영우는 흐르는 시간보다도 몇 배는 빠르게 불어나 있었다. 

 

 
 두려움.

 울컥울컥 자꾸만 차오르는 마음은 내게 낯선 만큼 무서웠고 겪어본 적 없는 생소한 감정은 스스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날선 것이라 제대로 쥐는 법을 몰랐다.


 눈이 시릴만큼 밝은 조명이 있는 무대 위에 내가 서 있었고,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불이 전부 꺼진 어두운 객석에는 어딘가 익숙한 사람이 앉아있었다. 
 내가 있는 곳은 너무 뜨거웠고, 형체가 흐릿한 그 사람은 점점 더 어둠 속에 파묻히는 것 같아 움직여 그쪽으로 걸어가고 싶었지만 무대 위에 양쪽 발이 고정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.

 이름. 이름을 부르면 좀 더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사적으로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아.


 안돼.

 사라지지 마! 



 너무 밝은 조명이 뜨겁고 괴로워서 점점 더 눈이 감겼을까. 반대로 이마에 닿는 기분 좋은 시원함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.

 꿈이었구나.


 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던 꿈 속보다 훨씬 더 무거운 몸이 생경하게 느껴졌을 때쯤 이마에 닿는 다른 이의 체온이 느껴져 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한 손으로 그 낯선 체온을 힘껏 잡았다.
 
 아직 흐릿한 시야가 꼭 조금 전의 꿈속 같아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좌우로 조금 흔들었을까. 얼음이 된 것처럼 굳은 얼굴을 한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.

 
  "너 누구야."
 
 내려다보는 얼굴에 어떤 동요도 없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할 때, 잡고 있던 손에서 조금 거친 손이 속도를 내어 빠져나가며 가까웠던 거리가 빠르게 벌어졌다.


 
 그리고 가벼운 인사.

  "새로 온 매니저 양 하준입니다."


 

 아 매니저.
 
 '매니저를 좀 바꿔줘요. 덜 오지랖 부리는 사람으로.' 


 수 없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던 날.
 그게 벌써 며칠 전 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방금 전의 꾼 꿈보다 훨씬 더 꿈같은 기억이었다.

 흐릿한 기억의 결과인, 여전히 한 방에 목석처럼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 몸을 일으키려 양 팔에 힘을 주자마자 그대로 팔이 접혀 반쯤 뜬 몸이 다시 침대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.


 내 행동에 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사람의 한 손에 있는 물수건을 보고 나서야 지금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.

 확실히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머리가 아팠으니까.



 뒤이어 쥐고 있던 물수건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는, 조금 거칠다고 생각했던 손이 몸을 일으켜 주려 망설임 없이 침대로 다가와 단단하게 등을 받쳤다. 그리고는 어깨를 감싸러 다가오는 또 다른 손을 놓치지 않고 힘껏 쳐냈다.


  "건드리지 마."

 입술을 물고 점점 더 무거워지는 몸을 최대한 힘을 주어 일으켰다. 
 
 손이 내쳐진 사람은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어떠한 말도 없이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계속 나를 주시할 뿐이었다.



 이 집에서 가장 사람의 흔적이 없는 부엌까지 가는 길이 힘겨웠다.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몇 번 자리에 멈추어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벽을 짚었다.

 입에서 나오는 더운 숨이 갑갑했다.

 
 텅 빈 집과 꼭 닮은 냉장고에는 언제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음료 몇 병이 전부였다. 잡히는 대로 집은 얼음처럼 차가운 음료는 손안에 쥐자마자 무언가에 의해 빠르게 낚아채였지만.

 바로 좀 전에 자신을 새로운 매니저라 소개하던 사람이 어느새 부엌까지 따라나온 건지 내 손에서 낚아채간 음료를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고 있었다.


 웃긴 모양새로 어정쩡하게 몸을 구부려 음료를 맨 아래 칸에 넣어놓는 등이 말을 했다.

  "우선 식사를 하고 약을 드세요."


 

 울컥.

 씨발. 네가 뭔데.


 머리가 좀 더 많이 지끈거렸다.

  
  
  "씨발. 너 지금 나랑 장난해?"

 목이 잔뜩 쉬어 쇳소리가 나는 말에도 여전히 느릿하게 냉장고 문을 닫은 몸이 뒤돌아 한 번도 켜지 않은 가스레인지 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.

 

  "취향을 몰라 일단 사 왔습니다. 이 중에 괜찮은 걸 알려주세요."

 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아니었다.
 
 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식탁 위에 놓인 한 체인점의 죽 봉투들. 그리고 여전히 제 할 일만을 하겠다는 듯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등.

  
  "필요 없으니까 꺼져."

 그대로 뒤를 돌아 침실로 걸어와서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워 한 팔로 여전히 시린 눈 위를 덮었다.  

 
 

 필요 없어.

 
 오직 하나였다.
 
 모든게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밤에 내게 오직 필요한 건 단 하나라고. 그렇게 수없이 되뇌며 간절히 빌었다.

 침대 속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목록을 살폈다. 그 사이 수신된 모르는 번호들을 아무리 위로 올려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에게 온 연락은 하나도 없었다.


  
 또다시 마음이 울컥거려 손에 쥔 핸드폰을 힘껏 벽으로 집어던지고 양 팔을 들어 시야를 가렸다.



 필요 없어.






 그리고 다시 잠들었을까. 눈을 다시 떴을 땐 방이 어둠에 잠겨 고요했다.
 
 짙은 새벽. 방안으로 드는 빛 한줄기가 싫어 달았던 두꺼운 커튼이 전부 젖혀있어도 방 한 쪽 끝까지 전부 어둠으로 물든 시간이었다.


 여전히 어지러웠지만 조금 더 가벼워진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몸 위로 덮여있던 얇은 이불과 함께 이마에 놓여있던 작은 크기로 접힌 수건이 떨어졌다. 
 물기가 전부 사라진 두꺼운 천을 손으로 살짝 쥐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침대 옆 탁자 위에 작은 쟁반이 놓인 게 보였다. 작은 그릇에 담긴 하얀 죽과 물 한 컵. 그 옆에 놓인 알약들과 전원이 꺼진 내 핸드폰.

 침대에 걸터앉아 무심결에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으려다 멈칫. 작게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.
 


 불이 전부 꺼진 거실에는 소파에 기대듯이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. 반이 접혀진 겉옷이 옆자리에 놓인 것 빼고는 입고 온 그대로 잠이 든 것 같았다.


 전 매니저는 언제나 말이 너무 많아 나를 미칠 것 같게 하더니 이 새끼는 또 말이 너무 없다.



 길게 뻗은 다리가 테이블에 닿는 큰 키.

 침대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던 얼굴에 겹쳐지는 사람이 있었다.   

  
 나온 길을 따라 움직이는 대로 켜진 조명이 멀리서부터 차례대로 하나둘씩 꺼지는 게 느껴졌다. 남은건 내 위의 마지막 하나. 
 
 저기 몇 발자국의 거리에서 발을 뻗고 나른하게 앉아 잠든 사람이 잠시라도 누군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머리 위의 조명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지 소리없이 존재를 지우며 사라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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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.4 재조립되는 관계

 >영우 (영우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.)

"체할 것 같으니까 자리에 좀 앉기라도 하지?"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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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재하영우
*위 글은 전부 픽션입니다.
*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건 불규칙합니다.
*글을 읽는 분들의 덧글과 피드백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. 


덧글

  • 2018/06/12 22:40 # 삭제 답글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acht uhr 2018/06/12 23:16 #

    안녕하세요. 약 한시간 반의 짧은 영화가 너무 아쉬워 풀어놓는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어쩌면 조금은 답답하게 이어질 것 같지만 지금처럼 즐겁게 읽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. 가벼운 코멘트나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의 지적도 좋으니 편하게 피드백 주세요. :) 감사합니다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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