C.5 반복되는 우연이 만드는 미래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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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하X영우


C.5 반복되는 우연이 만드는 미래



 >영우 (영우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.)


 아직 해가 지기 전, 오후에 도착한 베를린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더운 날씨였다. 여름 특유의 습한 공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따가운 햇빛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음에도 눈이 부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. 
 경력도 없는 새 매니저가 도대체 어떻게 출국 시간을 언론에 비밀로 부친 건지는 몰라도 여느 때와는 달리 공항이 한산했다. 

 물론 마스크와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절대로 날씨에 어울리는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인파에 둘러싸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. 



 
  "다음 스케줄은 내일모레부터니까 호텔로 이동하겠습니다." 

 약 일주일간의 해외 촬영으로 회사에서 붙여준 보디가드들과 공항 뒤편의 작은 통로로 나오자마자 곧 가깝게 다가오는 어두운 차에 올라탔다.

 긴 비행 동안 무릎 위에서 잠시도 떨어트려 놓지 않았던 작은 가방을 들고.

 


 손안에 쥐고 있는 익숙한 감촉의 낡은 천 가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낯설었다. 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도, 같은 계절의 여름 풍경도.

 하지만 적어도 일주일 간 머무를 호텔은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었다. 도심과 멀리 떨어지지 않아 교통이 편리하지만 금세 정체를 들켜 주위가 소란 스러지지 않을 만큼 복잡하지 않은 곳. 그리고 한 번도 따로 부탁한 적이 없음에도 무서울 정도로 커다란 방 또한.



 미리 예약된 방을 안내하는 남자를 따라 매니저와 들어간 곳은 벽면이 커다란 창문으로 뒤덮여있었다. 역시나 곳곳에 보이는 문으로 연결된 방이 몇 개인지 한눈에 알 수도 없을 만큼 넓은 곳을 자리에 서서 둘러본 후 앞에 있는 가장 커다란 유리창에 다가가 창들에 걸터앉았다.

 등 뒤쪽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말소리만 커다란 공간에 작게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.



 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끝도 없을 만큼 펼쳐져 있어 천천히 눈으로 훑으며 바라보고 있었을 때 어느새 필요한 대화를 마친건지 다가온 하준이 창가 끝 쪽에 붙어있는 커튼을 한 손으로 잡으며 말을 건넸다.


  "방 안에 창문이 커서 커튼을 전부 치겠습니다."



 반 정도 본 것이 전부였다. 아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더 살펴볼 수는 없겠지.
 
 언제나 아이돌 영우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.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창틀에서 내려온 영우는 아마도 침실 쪽일 거라 생각되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.

 이제는 이렇게 넓은 호텔방에서도 단숨에 침실을 찾을 수 있게 된 건가.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돌린 곳에는 절대 한 사람을 위한 크기라고 볼 수 없는 커다란  침대가 방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다.




  "독일어도 할 줄 알아?"

 침대 위에 가방을 툭 던지듯 내려놓고 뒤를 돌아 따라온 하준을 향해 조금 전 방을 안내해준 남자와 나누던 대화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.



  "아, 조금 할 줄 압니다."
  "일 하면서 배운 것도 있고 이번에 조금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한 것도 있습니다."


 가방을 내려놓은 침대와 침실로 들어오는 문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.

 똑바로 문가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이 역광이라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거의 변화가 없는 그 표정일 거라. 



  "나보다 나이 많잖아."


 나누던 대화에서 엇나간 주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난감한 것이었는지 발밑에 드리어진 그림자가 작게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. 

 발걸음을 떼서 문쪽으로 한 걸음.


  "전 매니저는 첫날부터 바로 나한테 말 놨는데 계속 그러려고?"



 이어 몇 걸음 더 다가가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변화가 없는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.





 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.



 언제나 조금도 줄이지 않은 말로 내게 관여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는 거침없는 행동에. 


 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는 채 이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보고 천천히 한 걸음 더 다가가 손을 조금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서자 순식간에 사이의 공기가 날 선 듯 팽팽해졌다.

 조금 전의 무언가 여유로운 분위기보다는 더 내게 익숙하고 어울리는 것이었다.



 확실히 더 키가 커.
 
 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이 한번 더 떠올랐을 때, 반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며 한 손을 들어 조금의 흔들림 없이 내려다보는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.




 확실하게 더 큰 키.


 이마에 다가오던 더 차가운 손.


 조금 더 웃지않고 조금 더 화내지 않는 입.



 
 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천천히 다가간 손가락이 어쩌면 입술을 조금 스쳤을까.

 점점 더 흐려지는 시야와는 반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영이 선명해질 때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다가온 또 다른 손이 겨우 떠오른 인영을 와장창 부수며 빠르게 손을 잡아챘다.

 반대쪽에서 반 걸음 더 가깝게 다가온 몸에 잡힌 손이 전부임에도 확실하게 나와 다른 체온이 느껴졌을 때. 


 아주 잠시 잡힌 손목이 더 세게 쥐여졌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거리가 멀어졌다.

 바로 조금 전의 기억이 전부 흐렸다.

 
 

 
  "오늘은,"



  "스케줄이 없으니"



 
 중간중간 끊긴 한 마디의 말이 귓가에 들리자마자 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져, 다음 문장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처럼.
점점 더 평소에 시간이 어떤 속도로 흘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고.
  



  "쉬세요."

 아마도 마지막으로 들렸을 거라 생각되는 말이 끝나자마자 휙 소리가 날 것처럼 빠르게 뒤돌아선 몸이 그대로 돌아나가 몇 차례의 문을 더 닫는 소리만이 텅 빈 곳을 울렸다.

.
.
.


C.6 반복되는 우연이 만드는 미래

 >영우 (영우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.)

'온 힘을 다해 기다리던 얼굴을 보고 나면,'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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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재하영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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